청송에서 심씨고택을 방문하여

심씨고택을 들어 서면서 느낀 것은 우리마을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우리 큰집도 제가 어릴때는 엄청 큰집이었는데 그래서 언제나 양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양반은 아무리 추워도 절대 곁불쬐지 않는 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우리 마을도 전부가 남가 집성촌이었고 거의가 기와 집이었으니 그럴수 밖에....
안내하는 분이 참 잘가르쳐 주었지만 메모를 못했으니 안타깝다.

청송군에서 ‘덕천동 심부자댁’으로도 불린다. 심호택은 조선 영조 때의 만석지기 재력가였던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이다.

1880년(고종17) 즈음, 호박골(청송군 파천면 지경리)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옮기면서 집을 지었는데, 그 집이 바로 송소고택이다. 13년에 걸쳐 지어졌고, 규모는 99칸에 이른다. 청송심씨는 1960년대까지 9대에 걸쳐 만석꾼 소리를 들었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으며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더불어 영남의 대부호로 명성이 높았다. 청송심씨 가문은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성실히 일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스스로의 노력에 하늘의 복까지 보태져 점점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재산에 집착하지 않았고, 재력을 이용해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원칙으로 인해서 청송심씨 가문은 부자로서 주위의 존경을 받을 있었다고 생각한다. 원칙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고 거기에 에티튜드가 더해지면 인생을 가치는 .... 좋은집 많이 보고 간다. 그래서 나는 페이스북을 좋아 한다. 누구든 다 보여 줄수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