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날에 올리는 글
마더스 데이에
올해도 어김없이 머더스 데이는 찾아왔다. 많은 분들이 카네이션을 부모님께 꽂아 드리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나도 모르게 회한에 젖는다. 촌에서 자랐기에 그 흔한 꽃의 아름다움을 돈으로 산다는게 자존심이 상해서 "엄마 괜찮지"그 변변한 꽃 한번 사드린적이 흔하지 않는것 같다. 굴절많은 청소년기를 보낸 필자는 무던히도 어머니 속을 썩혀드렸다. 고등학교를 수없이 옮겨 다녔는데도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으시고 믿어 주셨고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어머님이셨다.
언제였던가? 이웃동네 못된 녀석들과 죽기 살기로 싸운 후 상처투성이가 되어 들어 온 나를 향해 어머니는 “양반 아들은 싸움을 하지 않고 말로 하는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며 상처부위를 닦아 주시고 더러워진 옷을 깨끗한 옷으로 바꿔 입히시었다. 그 따뜻한 손길, 그 자애로운 음성...그 깨끗하게 입었던 것이 오늘의 뉴스타 유니폼으로 탄생 되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청년이 되어 대학에 들어가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날, 어머니에게 차비하라며 안주머니에서 깨끗하게 가보 같이 모아둔 돈 3000원을 꺼내 주시며 동네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시며 눈물을 감추시던 어머니, 시간만 나면 벽만 쳐다봐도 달만 쳐다봐도 남쪽 북쪽 가릴 것 없이 조용하기만 하면 기도하시던 어머님, 무슨 죄가 그리 많으신지, 무슨 신이 그리많았는지 빌때마다 싹싹빈다. 기도는 겸손이었던가. 기도를 보고 자란 내 마음은 오늘의 성격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 속 깊은 어머니의 마음을 못난 자식들은 어머니는 다 죄지은 줄 알고 그런 줄만 알고 자란다.
큰 형님이 고등고시에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도 기쁘셨겠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시아버지 잘 모시고 남편 잘 섬기며 언제나처럼 논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셨던 어머니. 지나가는 거지에게 조차도 따뜻한 밥을 해 먹이셨던 나의 어머니셨다. 자식들 다 훌륭히 키워냈지만 자랑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이제 내 나이 환갑이 훌쩍 넘기고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진다.그 흔한 카네이션 한번 꽂아 드리지 못한 나의 불효, 그렇지만 어머니는 하늘에서 나의 사모곡을 들으실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막내아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