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흑인 음주 운전자가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달아나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었다. 흥분한 백인 경관 네명은 그 흑인 운전자를 차 밖으로 끌어내어 경찰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 하였다. 우연히 인근 주민이 그 사건을 캠코더로 촬영을 하게 되었고 그 동영상은 뉴스 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바로 로드니 킹 사건이다


그 명백한 증거들로 인해 백인 경관 네명은 기소가 되었고 1992년 4월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사우스 센츄럴 지역에 밀집하여 살던 흑인들은 모두가 그 재판을 주시하게 되었다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모두가 백인으로 구성된 12명의 배심원들의 판결로 인해 그 당시 구타한 백인 경관 네 명 모두, 무혐의로 처리되고 말았다.흑인들은 분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거리로 뛰쳐 나왔고 마침내 1992년 4월29일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츄럴 지역에서 폭동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 불똥은 그 인근에 있던 코리아 타운으로 번져 오기 시작했다. 폭도들은 미친듯이 한인 업소를 약탈하고 불을 질렀으며 거리를 헤집으며 총을 싸대고 다녔다. 


무법 천지였고 전쟁 그 자체였다. 코리아 타운은 불길이 치솟았고 공들여 마련했던 아메리칸 드림들은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폭도들의 약탈에 모든 꿈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무심한 경찰력은 코리아 타운을 보호해 주지 못했고 오히려 자체 방범을 위해 조직된 코리안 타운 방범단마저 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하기 까지 하였다. 정치력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그 비극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없었고 언론은 그 사건을 한인과 흑인간의 갈등이라고 왜곡된 보도를 하기 조차 하였다. 그제서야 잠자던 한인들의 정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성금이 모여 졌고 자발적으로 10여만의 한인들이 모여 코리아 타운을 돌며 평화 대행진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민 1세와 2세들, 세대를 뛰어 넘어 한인들은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가지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는 각자가 무슨 일을 하든 자랑스러운 한인이라는 정체성 확립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각의식이었다. 


미주에는 현재 지상사와 유학생, 불체자까지 포함하여 약 250여만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연방센서스국이 발표한 2009년 전국 인구 현황 표본조사 자료(American Community Survey)에 따르면 미국 내 전체 한인 인구(혼혈 제외) 추산치는 총 133만5,973명(오차 ±2만4,867)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8년의 134만4,267(오차 ±2만6,878)명 대비 약 0.6%가 감소한 수치다. 5세 이상 한인 인구 중 가정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인의 수는 103만9,021명으로 전체 한인의 77.7%에 달했다.미국 내 가장 많은 한인이 거주하는 주는 캘리포니아로 전체 한인수의 30%에 해당하는 40만9,41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뉴욕(13만4,759명), 뉴저지(8만4,731명), 일리노이(6만6,957명) 순이었다. 


LA카운티의 한인 인구는 19만9,221명으로 2008년 20만6,897명 대비 3.7%가 줄었고 오렌지카운티는 7만5,067명으로 전년 대비 1.4%가 감소했다. 남가주 카운티별 한인 인구 증가율에서는 콘트라코스타 카운티가 28.67%로 가장 높았고 샌마테오 카운티는 1년 사이 한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47.92%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2001년 1월 1일 집계된  시민권자는 63만8천873이라 한다.점점 더 시민권자가 늘어 나는 만큼 이들의 정치 참여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코리아 타운을 이제는 주지사 후보 마다 찾아오게 되었고 코리아 타운의 매 행사 때마다 미국의 주력 인사들이 축사를 보내거나 방문하게 되었다. 시민권을 가진 한인들은 더욱 더 미국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미국 선거권을 취득하려면 반드시 먼저 시민권을 취득하여야 한다. 그러나 때론 대 다수의 한인 중에는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이  마치 미국에 완전히 귀화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고국으로 부터는 버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예로 부터 한국인은 그 어느 민족 보다 귀소성이 높은 민족이라 한다. 


인연을 중시하고 고향과 친지와 학연, 지연의 관계를 중시하는 끈끈한 인정의 민족이다 보니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것이 마치 한국으로 부터 인연을 잘라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알지 못할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그로인해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마저 더 이상 고국으로 부터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는 일을 망서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재외 동포들의 정치력을 신장 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들이 시민권을 취득하도록 독려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고국의 소속감 상실을 막기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그들을 얼싸 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웃 일본과 대만도 이중국적이 가능하고 이스라엘은 4중국적까지 허용하고 있다. 이중국적이 인정돼야 미국의 영주권자가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아 투표권을 갖게되고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재외동포들의 정치력이 신장되며 그 힘이 결국은 고국에게 돌아 가는 것이다




- "해외한인 참정권과 복수국적, 남문기 저, 134p ~ 138p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