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회 남문기 총회장

세계 각국에 조직돼 있는 한인회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제 10회 세계한인회장 대회가 지난 6월23일 서울 쉐라톤워커힐에서 열렸다. 올해는 66개국에서 450명의 한인회장이 참가해 역대 최대규모.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 축사를 하고 회장단과 30분간 티 타임까지 가졌다. 지난해 정부 최고위급 인사로 외교부 2차관이 나왔던 것과는 판이한 분위기다. 지난 2월 재외동포들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법이 통과됨에 따라 한인회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한인회 중에서도 규모가 큰 곳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 내 지역별 한인회를 아우르는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의 신임 회장 당선축하연이 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 6월26일 건국대 실버타운 더 클래식 500에서 열리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 중량급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케이크를 잘랐다. 정치인은 표가 있는 곳에 달려간다는 속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한국 국적의 해외 거주자는 줄잡아 250만명. 이중 130만명이 미국에 살고 있다. 15대 대통령 선거가 39만표, 16대 때는 57만표로 당락이 갈린 것을 감안할 때 이 숫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보팅 파워’다. 여든 야든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 몇 개쯤은 해외동포 몫으로 할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한인들의 지지를 받는 현지 인사가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해외 동포 사회는 한국 정치에 대한 기대로 한껏 들떠있다고 한다. 삼삼오오 모여 정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고, 한인회는 한인회 대로 참정권의 안정적 제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과열된 정치바람이 한인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란 우려도 만만찮다. 한나라당은 이미 한나라당 미주지부격인 US 한나라 포럼을 로스앤젤레스에 결성하기도 했다. 

이번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신임 남문기 회장을 찾아간 것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미주 동포들이 이번에 주어진 참정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래서 과연 얼마나 의미있는 해외투표가 이뤄질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한인 이민역사상 가장 성공한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남 회장의 삶의 역정(歷程)도 귀담아 들어볼 가치가 있다.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졌으며 못다한 이야기는 그가 LA로 돌아간 뒤 국제전화를 통해 보완했다. 

먼저 그의 이력을 잠깐 살펴보자. 경북 의성의 빈농(貧農)에서 태어난 그는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주택은행에 근무하던 1982년 ‘보다 큰 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그의 수중에는 300달러 밖에 없었으나 빌딩청소부 일을 시작으로 돈을 모아 부동산 회사를 차렸고 결국 총 매출 30억달러(3조6천억원·2005년)의 그룹으로 키웠다. 그래서 그의 이름 뒤에는 “빌딩 청소부에서 부동산그룹 CEO로” “300달러에서 매출 30억달러로”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남회장의 회사 ‘뉴스타 그룹’은 LA 본점을 포함해 미국 전역에 50여개 협력 또는 직영회사가 있고 이와 별도로 뉴스타장학재단과 뉴스타부동산대학 등이 있다. 그런 유명세가 바탕이 되어 그는 미국내 한인사회에서 가장 치열하다는 LA 한인회장 선거에 나가 당선되기도 했다. 맨주먹으로 이민 가 돈과 명예를 다 얻었으니 가히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다고 할 만하다. 그는 이제 무엇을 꿈꾸는 걸까.

서울에서 가진 미주한인회 총회장 당선 축하연에 여야 정치인들이 많이 참석했더군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인회장으로서 달라진 위상을 느끼셨나요.
“짧은 시간에 고위급 인사를 많이 만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인회장 대회장에서 다른 회장들과 함께 뵈었지만 그후에도 국무총리, 국회의장, 여야 대표, 국회 외통위 위원장, 행안부 장관 등을 두루 면담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꼭 ‘참정권이 주어졌으니 대우가 달라졌다’는 식으로 보아야 하나요. 참정권을 계기로 본국 정부에서는 재외국민을 배려하고, 재외국민은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갖게 된다면 서로 좋은 것 아닌가요.”

한인 사회가 정치적으로 분열하고 갈등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우(杞憂)라고 봅니다.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르고 의견이 갈리는 것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다른 나라도 재외국민에 참정권을 주는데 그것 때문에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다는 얘기는 못들어봤습니다. 21세기는 민족통합의 시대입니다. 국내 정치인들이 해외동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민족통합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멕시코 정치인들은 미국에 와서 사실상의 유세도 합니다.”

재외동포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될 것이란 전망이 있는데, 남 회장님도 한국 정치에 뜻이 있나요.
“동포 사회에서는 해외 한인의 입장을 대변해줄 일꾼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요청이라고 봐야겠지요. 저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참여할 수 있다’ 정도로 해 두면 안 될까요?”
국내 정치에 뜻이 있다는 것을 사실상 부인하지 않는다. 미국내 160여개 한인회를 포괄하는 자리에 선거를 통해 올랐으니 대표성이 인정되는 것 아니냐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질문을 이어가보자.

한인회는 엄정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런 선언 하지 않아도 선거법에 의해 단체 이름으로 선거운동은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한인회장은 자동적으로 중립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양식과 상식의 문제이지 선언하고 안 하고 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투표권이 주어져도 투표율이 실제 높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도 있던데, 얼마나 될까요.
“그러기 때문에 우편투표제를 허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무조건 공관에 나와서 투표하도록 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적지 않은 동포들이 몇시간씩 차를 타고 나오거나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그것도 등록하고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틀씩이나요. 생업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우편투표는 직접·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데, 한국 군인들도 하고 있고, 미국도 아무 문제없이 시행하고 있거든요. 왜 해외동포들에게만 안된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남 회장은 사실 투표권이 없다. 이민 가서 미국 시민권을 얻은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남 회장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인회장들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않다. 현지에 정착해 살려면 법적으로 현지인이 되는 게 정상적이다. 남 회장은 이 문제에 보다 적극적이다. 한인들의 입지를 넓혀가려면 유권자 파워를 형성하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가 미주총연 회장선거에 나서면서 내건 공약 1호가 ‘재미동포 시민권 취득 권장 및 유권자 등록운동’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어렵게 주어진 참정권도 행사할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한국과 미국의 투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미국 투표가 우선입니다. 현지사회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중국적을 허용해 그런 논란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이중국적이 가능해야 재외국민의 완전한 참정권이 보장되는 겁니다.”
그는 알기 쉽게 ‘이중국적’이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복수국적’이라는 가치 중립적 용어로 바꿔쓰도록 하자. ‘이중’이라는 말이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다 3개 국적 이상의 경우를 포괄할 수 없어 법무부에서도 ‘복수국적’이란 표현으로 바꾸는 내용의 개정법안을 입법예고해 놓고 있다.

한국적 정서는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인 복수국적 신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 시민권자가 국내 공직에 진출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거부감을 보이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치고 단일국적을 강제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 내에 코리안 아메리칸이 많아야 한국에도 힘이 됩니다. 한민족이 21세기 세계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에요. 저는 한국인 1천만 이민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미국 내에 또 하나의 한국을 건설하자는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의 이 주장을 듣고 ‘우리도 사람 필요한데 다 데려가면 어떡하나’라고 농담을 했다고 해요. 세계화 시대에는 어느 나라에 가서 살아도 됩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보십시오. 언젠가 미국에서 한국계 대통령도 나와야 할 것 아닙니까.”
이쯤에서 화제를 바꾸어 그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자. 빌딩청소부로 시작해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해병대 정신, 캔두 정신을 꼽았다. 청소부 시절 그는 어떻게 하면 청소를 잘 할 수 있을까 연구한 끝에 여러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해 청소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든 뒤에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광고에 아낌없이 투자해 큰 효과를 봤다. 한 예를 들면 그는 골프장에 갈 때마다 ‘뉴스타부동산 남문기(New Star Realty:Chris Nam)’라고 새겨진 골프티를 가지고 가 티 박스에 몇개씩 뿌려놓았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새 티를 보면 대개 반색을 한다. “골프 티는 이병철도 줍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한 홀, 두 홀 줍다가 18홀까지 ‘남문기 티’를 보게 되면 자연히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 회장은 그외에도 일간신문, 입간판, 옥외광고 등 각종 매체에 사진과 이름을 담은 광고를 실었다. 광고문구는 단 한마디 “잘하겠습니다.” 초기에는 1년 수입의 절반을 무조건 광고에 쏟아 붓겠다고 결심해 그대로 실천했고, 그게 성공의 원동력이 되었다.

성공의 비결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13가지 항목으로 정리된 게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러면서 밝힌 그의 성공학 강의 10가지만 꼽으면 이렇다. 주로 세일즈맨에 해당되는 얘기다. 1)꿈을 세우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고야 만다는 자기 암시를 걸어라 2)성공한 사람을 벤치마킹하라 3)수도 펌프질 하듯 세일즈 하라. 일단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천천히 펌프질 해도 물이 잘 나온다 4)시간은 돈이다. 가장 먼저 출근해 부지런히 일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5)열심히 공부하라. 책을 100번 읽으면 그 뜻을 깨닫게 된다 6)계획을 잘 세워라. 계획하는 데 실패하면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같다 7)배짱을 가지고 밀어붙여라. 최후의 승리는 실천하는 자의 몫이다 8)의리를 지켜라. 의리는 인간의 바탕이며 예의다 9)신뢰를 지켜라. 고객의 일을 내 일처럼 처리해야 감동을 준다 10)진심으로, 기술적으로 칭찬하라. 상대와의 인연의 고리를 만들 명분을 찾아 식사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칭찬하라.

뉴스타 경영은 어떻게 합니까. 
“감동을 주는 경영, 함께 하는 경영, 부지런한 경영입니다. 저는 뉴스타 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라고 합니다. 양복은 물론 와이셔츠, 티셔츠, 점퍼, 업무용 가방, 자동차 번호에까지 뉴스타 로고와 사명을 새기도록 하고 수시로 모여 ‘팀뉴스타 팀뉴스타 팀뉴스타’하고 구호를 외치게 합니다. 결속력이란 그만큼 중요합니다.”

유니폼이나 구호에 미국인 직원들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인들이 더 좋아해요. 물론 구호 안 외친다고 나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회사가 크니까 지난 몇년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꽤 많이 까먹었습니다. 그래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 자신도 물론 성공했지만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 2,000명도 잘 살게 됐습니다. 그중 싱글 맘인 직원 300~400명은 밀리어네어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동포사회에서 누구 못지않게 기부금을 많이 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요.”

남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미주한인회 총회장의 임기를 7월부터 막 시작했습니다. 선거 때 제 구호가 “잘 사는 한인사회 만들자와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미주한인의 위상을 높이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게 저에게 주어진 소임입니다. 그 소임을 충실히 하고 싶습니다. 미국 정부를 향해 우리 한인들의 실질적 권익을 찾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는 국적문제와 참정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더 욕심을 내자면 이민사회에 롤 모델(본보기가 되는 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는 사실 어느 정도 겸양의 발언이다. 이미 그는 적지않은 사람들로부터 롤 모델이 되어있다. 그가 해외 한인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들어찬다. 그의 자서전 ‘잘하겠습니다’(도서출판 이채)란 책을 보고 무작정 미국에 왔다며 그를 찾아온 청년도 7명이나 된다. UCLA의 한인학생들은 도산 안창호는 몰라도 남문기가 누군지는 안다는 말도 있다. 미국 땅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한 그가 해외한인 참정권 시대를 맞아 국내 정치와 한인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할 지 두고볼 일이다. 


“우편투표제를 허용해야 합니다. 지금은 무조건 공관에 나와서 투표하도록 돼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적지 않은 동포들이 몇시간씩 차를 타고 나오거나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그것도 등록하고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틀씩이나요. 생업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