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의 新줌마병법] 광화문 미로에서 만난 남자


단돈 300달러 쥐고 미국으로 날아가 청소부에서 부동산업계 신화가 된 남자
‘왕회장’ 정주영처럼, 모든 일은 가능하다 믿는 사람만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肝癌 선고 받고도 웃었다. “까짓것, 맞짱 한번 제대로 떠보지 뭐, 하하!”


입력 2020.10.20 03:00

일러스트=이철원


남문기란 이름이 떠오른 건, 광화문 차벽을 뚫고 교보문고를 찾아가던 날이다. 네 번째 검문한 경찰이 ‘교보로 가는 유일한 통로’라 일러준 횡단보도를 건너자 한 사내가 마이크를 쥐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에 마이크 성능까지 나빠 그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앰프가 든 가방을 달달달 끌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사내를 바라보다 남문기를 떠올렸다.

아마도 독설(毒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 가을 LA 한 밥집에서 만난 남문기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었다. 내 조국 대한민국이 망해가고 있어요. 단돈 300달러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남자였다. 누굴 만나든 해병대 266기란 사실을 밝히는 ‘싸나이’였다. 붉은 넥타이에 금장 시계를 찬 남자의 ‘라떼는 말이야’를 태평양 건너까지 날아와 들어야 할 생각에 체기가 일었다. 우리 앞엔 막 끓여져 나온 은대구조림이 놓여 있었다.

경북 의성 차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동네서 유일하게 신문 보는 집이었다. 할아버지는 신문지를 깔고 손자들에게 붓글씨를 가르쳤다. 개천 용이었던 형은 부산으로 유학 가 서울대에 들어갔지만, 쌈박질 일등이던 남문기는 전학과 퇴학을 밥 먹듯 했다. “명분 없는 싸움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 하늘이 무너져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오라”는 어머니 불호령에 뒤늦게 철이 들었다. 죽기 살기로 공부해 내리 대학까지 갔다.

먹물들은 개병대라 조롱하는 해병대에 자원했다.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 생각하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습관이 이때 생겼다. 죽기 살기로 해도 안 되는 일은 있었다. 사법고시에 거푸 낙방하면서 남문기는 인생 항로를 돈으로 틀었다. 학생회장을 지내며 협상력, 추진력에 재주가 있다는 걸 알았다. 주택은행에 입사했다. 빚내서 다닌 대학이라 돈이 필요했다. 화끈하고 집요하고 자상해서 고객이 줄을 섰다. 사막에 갖다놔도 궁궐 짓고 살 사람이라고들 했다. 내 앞길에 밤 놔라 대추 놔라 안 할 자신 있으면 같이 살자고 청혼한 여인과 결혼했다. 그 좋은 직장을 2년 만에 그만둔 건 솟구치는 에너지 탓이다. 쳇바퀴, 무변화, 철밥통이 싫었다.

300달러 쥐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방 한 칸 월세가 230달러였다. 청소부가 됐다. 4년간 닦은 바닥만 2만 개. 바닥을 거울처럼 닦으니 사장이 일당을 ‘따블’로 줬다. 팀장으로 승진했다. 키 큰 팀원은 천장과 유리창을 닦게 하고, 작고 뚱뚱한 팀원은 앉아서 정리하는 일을 시켰다. 사나흘 걸릴 저택이 한나절에 끝나니, 월 8000달러 벌던 회사가 30만달러를 벌었다. 세상에 지우지 못할 때는 없고, 문제엔 반드시 답이 있었다. 다시 사표를 냈다. 매달리는 사장에게 말했다. “나는 이 회사를 내 것이라 여기고 일했다. 그래서 즐거웠다. 하지만 청소부가 되려고 미국에 온 건 아니다. 내겐 더 큰 꿈이 있다.”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청소하며 관찰하니 부동산업은 미국 경제라는 거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였다. 직원 셋으로 시작했지만 남문기란 이름 석 자는 삽시간에 브랜드가 됐다. 집을 사고팔 때 낯 익은 사람에게 맡길 거란 심리를 공략했다. 신문과 버스정류장, 대형 광고판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새겼다. 매물이 나오면 경쟁 업체보다 더 빨리, 더 넓게 움직였다. 집의 묵은 때를 벗기고 잔디도 깎아줬다. 직원들에겐 회사 로고를 새긴 셔츠와 재킷을 입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폭풍도 기회로 삼았다. 에이전트만 2000명, 미 전역에 50개 지사를 냈다. 위기엔 언제나 배짱 좋은 놈이 이기죠.

박정희, 정주영 같은 인물이 없다고 그가 탄식했을 때, 은대구조림은 식어 있었다. 2년 전 간암 선고를 받은 남문기는 밥을 많이 먹지 못했다. 까짓것, 누가 이기나 맞짱 한번 떠보려고요, 하하!

최근 소식을 전한 건 인터넷이다. 코로나 창궐했던 대구·경북에 그는 마스크 4만장을 보냈다. 지난 여름 광화문 백선엽 장군 분향소에도 서 있었다. 수술, 이식, 재발, 다시 수술을 거듭하면서 풍채는 야위었으나 눈빛은 형형했다. 부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큰소리치던 그 허세가, 문득 그리워졌다. 언젠간 미국에서도 한국계 대통령이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오바마처럼? ‘라떼’들의 나라 사랑은 왜 이리 징하고 촌스럽고 열렬한지. 쫄보와 잔챙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이라 그런가.

차벽을 돌고 돌아 도착한 교보문고는 굳게 닫혀 있었다. 시위하던 사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등에 메고 있던 팻말이 뒹굴었다. 지키자 자유대한.


https://www.chosun.com/opinion/essay/2020/10/20/2NKHUO2WNNEANJLYFDCNT74E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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