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가 밀집 공간에서 사람들이 겹쳐 쓰러지는 ‘군중 눈사태(群衆雪崩)’로 인한 사고라고 진단했다. 인파가 몰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군중 밀집 행사에 참석할 경우 안전 요령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대 교수 “이태원 참사는 군중 눈사태”

도시 방재 전문가인 히로이 유(井悠) 도쿄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1㎡당 10명 이상 밀집한 상황에서 누군가 넘어지거나 주저앉을 경우, 균형을 잃은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빈 공간 방향으로 쓰러지는 현상인 ‘군중 눈사태’가 이태원 참사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보통 만원 전철의 경우 1㎡당 6~7명 수준이다. 군중 전문가들은 군중 밀도가 ㎡당 5명을 넘으면 잠재적으로 위험한데, 이태원 참사 당시엔 ㎡당 8~10명이 있었다고 추정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일본 효고현립대 무로사키 요시테루(室崎益輝·방재계획학) 명예교수는 군중 눈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리는 길을 일방통행으로 하고 ▶인파가 한자리에 멈추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요미우리에 밝혔다.

 

 

군중 눈사태 상황에 말려들었을 경우, 가슴 압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류현호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보통 인파가 많으면 물결처럼 흘러가는데 이 흐름에 반하지 말고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팔짱을 껴서 가슴이 눌렸을 때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만약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직진하지 말고 대각선으로 질러 가서 최대한 가장자리로 빠져야 한다”고 말했다. 류 이사는 “외국에선 사람이 많을 때 가방을 앞으로 많이 메는데 소매치기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의학적으로 압사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라고 설명했다.

최석재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홍보이사(응급의학과 전문의)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일정 밀도 이상 들어가지 않도록 상황을 먼저 통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파에 몰릴 때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대로 복싱 자세를 취해 최대한 앞쪽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람이 몰려 넘어졌을 때 바로 일어날 수 있도록 주위에서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하고, 그 외에 의식을 잃은 사람이 생기면 안전한 공간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하며 119를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영국의 전문가들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과의 인터뷰에서 “군중에 갇혀 꼼짝 못 할 경우 권투선수처럼 팔을 들어 가슴을 보호하라”고 강조했다.

군중 전문가 키스 스틸 영국 서퍽대 객원교수는 행사장 초입부터 보안과 티켓 확인 과정 등이 혼란스럽게 보이면 그 행사는 군중 안전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방 있으면 앞으로 메 공간 확보”

군중 전문가 폴 워트하이머는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출구뿐 아니라 모든 출구를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하나의 출구로 몰리면 갇힐 수 있다”며 “야외 행사의 경우 참석 전에 지도를 보고 잠재적인 탈출 경로와 피해야 하는 좁은 길, 막다른 길을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장 붐비지 않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군중의 앞이나 가운데보다 가장자리나 뒤쪽이 낫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몸이 주변 사람들에게 밀릴 때’와 ‘군중이 움직이다가 느려질 때’를 밀도가 증가하는 ‘위험 신호’로 꼽았다. 스틸 교수는 “사람들이 불편과 괴로움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는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군중 전문가 마틴 아모스 노섬브리아대 컴퓨터·정보과학 교수는 “움직임이 자율성을 잃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핵심”이라며 “자기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지는 순간 바로 그곳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변 사람이 넘어졌을 땐 재빨리 일으켜줘야 군중 붕괴를 촉발할 수 있는 ‘도미노 현상’을 예방해 자신의 생존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아모스 교수는 “군중 충돌은 전투가 아니다. 모두 살아서 나가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팔이 옆구리 쪽에 고정되지 않게, 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워트하이머는 “자신과 자신의 앞사람 사이에 더 많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권투선수처럼 서 있어라. 손을 가슴 앞에 두고, 한쪽 발을 다른 쪽 발 앞에 놓은 채 벌리고 무릎은 약간 구부려 경직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떨어진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줍기 위해 몸을 굽히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줍지 말고 그냥 두라고 했다. 아모스 교수는 “이동할 땐 군중의 흐름이나 압력에 저항하지 말고, 흐름을 따라가라”고도 했다. 넘어졌을 땐 일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힘들 경우 ‘태아 자세’처럼 옆으로 눕는 게 심장과 폐를 보호하는 길이다.



이영희.임선영.이우림(misquick@joongang.co.kr)

출처:미주중앙일보